최근 개최된 22대 국회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담은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예타는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 추진을 목적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예타 면제 조항을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개원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2대 국회는 현재까지 24건의 예타 면제를 포함한 법안을 발의하였다. 이들 법안은 대부분 철도 및 공항과 같은 대형 SOC 사업과 관련이 있으며, 총 사업비는 20조 원에 이른다. SOC 사업과는 무관한 법안으로는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연구개발(R&D) 예타 폐지 법안이 유일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끄는 법안은 충남 서산과 경북 울진을 연결하는 중부권동서횡단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여야 의원들이 서로 발의한 법안에서 예타 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 사업은 총 6조 3604억원으로, 중앙정부의 대규모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의원들은 예타를 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개별 법안의 예타 면제 규정이 예타 제도의 형해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최대한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토교통부도 중부권횡단철도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추가검토 사업으로만 반영되었으며, 현 시점에서 추진 필요성이 낮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수원 군 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사업비의 추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 공항 이전과 신공항 건설 모두 상당한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백 의원은 해당 법안에도 예타 면제를 포함시켰다.
재정 전문가인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가재정의 낭비를 초래하는 예타 면제 법안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이러한 법안이 통화 인플레이션이 아닌 재정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진행 중인 총 사업비 13조 5000억원 규모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예타 면제 사업으로, 용지 조성 공사 입찰에서 네 차례 유찰 후 현대건설과 최종 수의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국회에서의 예타 면제 법안의 남발은 단기적인 지역구 선심성 사업을 넘어 국가재정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