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통화 질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디지털 달러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중심축에 자리 잡으며 그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디지털 달러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규제로 인해 디지털 위안화의 확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달러는 기술적 진화를 통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으며, 위안화는 이러한 환경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지니어스법(Genius Act)’ 통과로 스테이블코인은 제도권 내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법안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이자도 수익성도 없지만 ‘언제든 1달러로 교환 가능하다’는 신뢰로 인해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과 자본 통제 문제를 겪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디지털 달러가 기존 은행 예금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서 송금비용은 줄어들고 환율 리스크도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금융 혁신을 넘어서서는 전통적인 통화 패권의 새로운 양상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법적으로 자산의 대부분을 단기 국채와 예금으로 보유해야 하며, 이는 미국 재정적자의 자금 조달 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달러 패권은 더 이상 외환보유고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효과가 새로운 패권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반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는 여전히 시장에서의 확산에 실패하고 있으며, 홍콩의 민간 스테이블코인 실험도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통제적인 정책이 이러한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과 홍콩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이를 실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의 시선이 중요한 시점에 다가왔다. 한국은 디지털 금융 인프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지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정책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18원대에 도달함에 따라, 디지털 달러가 글로벌 결제의 표준이 된다면, 국내 투자자와 기업들이 ‘달러 토큰’을 더 안전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결국 원화 유출 압력과 금융주권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이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를 공공과 민간 협력을 통해 구축해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안정적인 통화 정책과 기술 주권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발전해야 하는 사안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의 개념을 넘어, 21세기 통화 주권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지해야 할 때이다.
결국, 달러는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위안은 규제 속에 갇혀 있다. 그리고 원화는 이 두 조류 사이에서 현재 시험대에 놓여 있다. 이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금융 패권에서 디지털 종속국이 될 것인지, 아니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이 도래하였다. 이러한 세계적 통화 질서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