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M&A 시장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는 대기업보다 사모펀드(PEF)가 주도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한 대다수의 대기업들은 투자 실패와 주력 산업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M&A보다 사업 부문 매각에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인수·합병 시장의 활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사모펀드가 국내 기업을 인수한 거래 규모는 약 3조6000억원에 달하는 반면, 대기업의 거래액은 약 3조1500억원에 불과해 사모펀드가 더 많은 인수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사모펀드 거래로는 글랜우드PE가 인수한 LG화학의 수처리사업부(1조4000억원),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에스아이플렉스 인수(4300억원), 그리고 어펄마캐피탈의 CEK 인수(4000억원) 등이 있다. 이는 대기업들이 강력한 자금력을 가진 사모펀드에 비해 인수 활동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 상반기 대기업의 M&A 활동은 규모가 미미하여 ‘조 단위’ 거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교보생명이 SBI저축은행을 인수하고, 한화그룹과 웅진이 각각 아워홈과 프리드라이프를 인수했지만 이들 거래는 신사업으로의 확장일 뿐 미래 신기술과의 연관성은 낮은 상황이다.
산업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로 인해 수익성 있는 기업에 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미래 기술 관련 M&A는 위험부담이 커지면서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와 같은 대규모 인수는 현재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SK, LG, 롯데, 효성 등 대기업들은 석유화학 및 배터리 부문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신규 인수보다는 사업부 매각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SK그룹은 지난해 SK스페셜티와 SK렌터카를 매각하며 계열사 수를 줄여왔고, 현재도 SK실트론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포함한 추가 매각을 검토 중이다.
결과적으로 대기업들이 매도자의 입장에 서면서 국내 M&A 시장은 활기를 잃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3년간 M&A 시장의 거래 규모는 30조에서 40조원에 그쳐 2021년의 70조원대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외에도 사모펀드들이 엑시트를 앞두고 여러 조 단위의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이들을 소화할 여력이 부족하다.
IB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부족해 ‘조 단위’ 매물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M&A 시장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