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전 총재 “EU, 美·中에 뒤처지는데 위기의식 부족”

[email protected]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럽연합(EU) 경제가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 뒤처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U 각국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 발간 1주년 콘퍼런스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드라기는 “EU가 미국과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리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현 상황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장 모델은 사라지고 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EU의 경쟁력은 물론 주권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힘을 합쳐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현행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후퇴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EU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와 규제 난립, 그리고 더딘 투자 유치와 같은 문제점들을 짚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드라기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상대들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다”며, EU가 개별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드라기 전 총재가 지난해 9월 발표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 발간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보고서에서 드라기는 EU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존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으며, 산업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 경제가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매년 8000억 유로 규모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 거래 질서를 변화시켜 EU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드라기는 지난 20년간 EU의 성장률이 미국보다 낮았고, 중국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여 유럽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유럽을 떠나거나 미국 증시에 상장되고 있으며, EU 내 정책 공조와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드라기 전 총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법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행이 미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EU 집행위가 드라기 전 총재의 권고안을 채택했으나, 실제로 이행된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정치적 갈등으로 묶여 있다”며 “지난 1년간 드라기의 제안 중 11.2%만이 실제로 실행되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의 대내외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콘퍼런스에서 “EU 내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식이 전반적으로 퍼지길 바라며, 이러한 긴급한 요구에 부응하려면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