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남미의 풍토병으로 알려진 ‘샤가스병’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보건 당국이 높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5일(현지시간) 샤가스병 환자가 최소 8개 주에서 발견되었다고 발표하며, 이제는 외래성 질환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토착 감염으로 인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만 감염자가 7만에서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샤가스병은 주로 ‘키싱버그’로 알려진 흡혈노린재에 의해 전파된다. 이 곤충은 주로 밤에 사람의 얼굴, 특히 입과 코 주변을 물어 배설물을 통해 감염을 유도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의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염되거나 장기 이식 및 수혈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야간에 흡혈노린재에 의한 물림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만큼, 시민들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샤가스병의 잠복기는 보통 12주이며, 초기 증상은 발열, 피로, 발진으로 나타나지만, 많은 경우에는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않게 된다. 급성 감염 환자 중 일부는 눈 주위가 붓거나 물린 부위가 부풀어 오르기도 하지만, 이러한 뚜렷한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이는 샤가스병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감염된 후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추정에 따르면, 감염자의 20~30%는 심장질환이나 소화기 질환 등으로 경과하며, 이는 심장 비대, 부정맥, 심부전, 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식도와 대장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 거대식도증이나 거대대장증 같은 증상들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이 질병의 예후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재 샤가스병에 대한 치료제로는 벤즈니다졸과 니푸르티목스 두 가지 항기생충제가 승인되어 있으나, 완치율은 감염 시기에 따라 다르며, 효과적인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특히 어린이 감염자의 경우 성인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샤가스병은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600만에서 800만 명의 감염자가 있으며 연간 약 5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내 여러 의사들이 샤가스병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며 조기 진단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플로리다대의 노먼 비티 교수는 “샤가스병은 ‘침묵의 살인자’인 만큼, 미국에서 잊힌 열대병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경고하며, 시민들이 자택 주변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장작더미 및 불필요한 물건을 제거하며 문틈과 창문 틈새를 차단하고 방충망과 살충제를 사용하는 등 실생활 예방책을 권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