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스테이블코인 혁신법(GENIUS Act)’은 발행사 등록, 준비금 규제, 공시 의무를 명확히 하면서도 민간의 실험을 제도권 내에서 장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좋아서 제 이름을 땄다”고 농담했지만, 이 법의 실질적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은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글로벌 결제 혁신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의 실물 자산으로 담보된 암호화폐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는 달리 가격 변동성이 적어 결제 및 송금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국제 송금 시스템에서는 은행 수수료가 평균 15달러, 카드 결제 수수료는 2%에 이르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몇 분 이내에 10센트도 안 되는 비용으로 송금할 수 있다. 이러한 금융 환경 속에서 미국의 규제 정비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현재 2,600억 달러 규모에서 2028년에는 2조 달러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한국의 반응은 여전히 신중하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 화폐를 대체하고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한국은행 또한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금융 시스템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이 같은 이유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자금세탁 방지 및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는 특정금융거래법과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시장을 조율하고 있지만, 결제 혁신이나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는 분명한 뒤처림이 눈에 띈다.
한국이 이 글로벌 흐름에서 도태될 위험이 크다는 점은 매우 심각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디지털 달러와 같은 ‘국제 결제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터키, 나이지리아 등의 신흥국에서는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실험이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활용 전략이 뚜렷하지 않아,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이에 미국은 디지털 금융 질서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혁신에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무너질 경우, 2008년의 머니마켓펀드 사태와 유사한 금융 시스템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발행사에게 100% 준비금을 보유하고, 투명한 공시를 의무화했다. 이는 혁신과 안전성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잘 설정한 예로, 규제가 불확실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불확실한 태도를 지속할 경우, 디지털 결제의 미래는 미국과 민간 글로벌 기업들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금융안정이라는 명분만으로 민간 혁신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명확한 규제 아래에서 이 혁신을 허용하는 것이 진정한 금융안전으로 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