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불법 이민자를 강제 추방하는 과정에서 전신 구속 장비를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심각한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출신의 A씨를 포함한 최소 7명의 이민자가 ICE에 의해 ‘랩(WRAP)’이라 알려진 구속복을 착용한 채 비행기에 태워져 추방됐다.
랩은 수감자의 얼굴을 덮는 마스크, 상체와 하체를 고정하는 하네스, 발목 족쇄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감자가 몸부림치거나 침을 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장비는 1990년대 후반 ‘호그타이’라고 불리는 결박 방식에 대한 인권 비판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수감자를 ‘부리토’ 또는 ‘가방’과 비유할 만큼 완전 고정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국토안보부(DHS)는 2015년부터 이 구속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제조사인 세이프 리스트레인츠에 약 26만8523달러, 즉 약 3억8000만원을 지급하였고, 이 중 91%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집행됐다. 현재 미국 전역의 1800개 이상의 기관에서 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ICE가 랩 제조사의 사용 지침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세이프 리스트레인츠는 이 장비는 오직 자해 우려가 있거나 경찰을 공격할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나, ICE는 변호사 접견을 요구하거나 추방에 항의하는 등의 이유로 구속복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A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밤중에 손발이 묶이고 얼굴까지 덮인 채 납치된 기분이었다. 나를 가나로 보내겠다고 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가나 출신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변호사와의 접견조차 허락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ICE의 랩 사용을 명백한 인권 침해로 보고 있으며, 텍사스A&M대 법학 교수인 파트마 마루프는 “랩은 모든 다른 수단이 실패했을 때만 사용하는 최후의 조치여야 하며, 그 자체로도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DHS의 대변인인 트리샤 맥러클린은 “추방 비행 중 구속은 ICE의 오랜 표준 절차이며, 피구금자와 요원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랩 사용에 대한 기록이나 내부 검토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미국 이민 정책과 인권 문제의 복잡한 관계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민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