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서 테더(USDT)는 사실상 ‘대안 화폐’로 자리 잡고 있다. 경제 불황이 계속되면서 연간 물가 상승률이 무려 229%에 달하는 가운데,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의 기능이 마비되자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소수의 암호화폐 사용자들만 이용하던 테더가 이제는 ‘바이낸스 달러’라는 이름으로 음식 구매, 아파트 관리비 납부, 급여 지급 등 일상 생활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캐나다의 암호화폐 금융사 렛든(Ledn) 공동창업자인 마우리시오 디 바르톨로메오는 “테더는 현금이나 현지 은행 계좌보다 신뢰성이 높은 선택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통제와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2018년 캐나다로 이주한 경력이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미 달러 환율이 세 가지 종류로 나뉘어 있으며, 중앙은행에서 고시하는 공식 환율은 달러당 151.57볼리바르다. 반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는 231.76볼리바르에 달하고, 바이낸스에서의 테더 환율은 219.62볼리바르에 이른다. 이처럼 높은 유동성과 신뢰성 덕에 많은 상인과 소비자들이 테더 환율을 실제 거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디 바르톨로메오는 “소비자든 기업이든 모든 상품 가격과 결제가 달러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며, USDT가 단순한 디지털 달러를 넘어 현지 경제에서 금융 평등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25년 글로벌 암호화폐 채택 지수에서 세계 18위, 인구 기준 조정 순위에서는 9위를 차지했다. 1만 달러(약 1,390만 원) 이하 거래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달하며, 전체 암호화폐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110% 증가했다. 이러한 통계는 경제 붕괴 속에서도 암호화폐 이용이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볼리바르는 사실상 퇴장한 자리에서 테더(USDT)가 신뢰받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불안정한 국가 경제에서 디지털 자산이 어떻게 실생활의 통화 대체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테더가 대안 화폐로 자리잡으면서, 국가 경제의 회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