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로저 버와 이흥직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암호화폐 산업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일환이다. 로저 버는 1999년 메모리딜러스라는 컴퓨터 부품 판매 웹사이트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2002년 이베이에서 면허 없이 폭발물을 판매한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미국 연방교도소에서 10개월을 복역하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그는 화폐의 개념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감옥에서 담배, 우표, 국수 등이 화폐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는 나중에 암호화폐의 비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그가 출소한 후에도 3년간 보호관찰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2005년에 일본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감옥에서도 메모리딜러스는 그에게 끊임없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반면 이흥직은 1996년 산호세대학교에서 도시공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미국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7년에 IMF 경제위기가 한국을 강타하자, 다른 유학생들이 귀국하는 대신 이흥직은 졸업을 미루고 미국에 남았다. 그는 반도체, 서버,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중, 로저 버와의 인연은 1997년 당시 그들의 사무실이 인접해있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둘의 첫 만남은 자연스러운 연속성이 있었다. 로저 버는 당시 메모리딜러스라는 사업 아이디어를 고심하고 있었고, 이흥직은 기존의 비즈니스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두 사람이 함께 암호화폐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로저 버는 나중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암호화폐의 대중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금융 시스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흥직 역시 한국 내에서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창업과 투자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다.
이들의 협업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암호화폐 생태계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암호화폐의 역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서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에피소드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