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민간 금융 실험이 아니라, 글로벌 통화 질서를 재구성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선민 인하대 교수의 저서 《스테이블코인의 시대》는 이러한 스테이블코인의 본질과 그 기능을 분석하며, 이에 따라 미국 달러의 패권이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현재 미국 달러는 공식적인 정부 발행 없이도 여전히 세계의 중심 통화로 자리잡고 있으며, 스테이블코인은 그 달러를 전 세계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패권 기계’ 역할을 하고 있다. 테더(USDT)와 서클(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미국 금융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사용자 예치금이 미 달러화, 국채, 단기 채권으로 운용되며 미국 경제에 직접적 기여를 하고 있다. 이선민 교수는 이를 “디지털 달러화를 통한 패권의 민간 확장”으로 표현하며,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사실상 미국 달러 자산의 활용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마치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처럼 작동하여, 누구나 블록체인 지갑만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허가 없이도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은 ‘열린 달러 네트워크’로 발전하며, 금융권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달러의 사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정부의 법적 권한으로 설계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시장 수요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설계되고 있다. 이선민 교수는 미국이 CBDC 도입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글로벌 통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며, 스테이블코인이 유연함과 혁신성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탈달러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 속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달러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과 불안정한 자국 통화를 보유한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받아들이면서, 미국은 자국 통화의 확산이 민간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강제된 달러’가 아닌 선택의 결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경쟁적인 위치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CBDC는 정책적 실행과 공공 인프라에 중점을 두고 사용되며, 스테이블코인은 시장의 자유롭고 유연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선민 교수는 “CBDC는 정부의 손, 스테이블코인은 시장의 손”이라며, 두 손이 함께 움직일 때 달러의 영향력은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정부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구조적 이익은 미국 금융권에 귀속되고 있다. 이선민 교수는 이를 “21세기형 금융 패권의 민간 위임”이라고 정의하며, 스테이블코인이 국가의 명령이 아닌 코드와 시장의 선택에 의해 작동하는 패권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미국은 이미 블록체인 위에서 ‘달러의 재설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