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300조원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슷한 성격의 ETF가 너무 많이 출시되며 질적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기준으로 한국 내 상장 ETF의 순자산 총액 상위 10개 ETF는 총 72조9729억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ETF 순자산의 24.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순자산이 100억원을 넘지 못하는 ETF는 158개에 이르며, 이들은 전체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순자산 총액이 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ETF는 26개에 달하고 있어 일부 대형 ETF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 활성이 없는 ‘좀비 ETF’가 증가하는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유사 상품의 남발은 시장의 혼잡을 불러왔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 방산, 원자력 등 특정 테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여러 자산 운용사들이 유사한 구성의 ETF를 잇달아 출시했다. 예를 들어, 국내 조선 ETF는 작년에 4개에서 7개로 증가했으며, 방산 ETF도 3개에서 7개로, 원자력 ETF는 2개에서 5개로 늘었다. 이렇듯 기초 지수와 편입 종목, 비중도 비슷한 상품들이 동시에 시장에 쏟아지면서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산운용사들 간 출혈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상품의 차별성과 혁신보다는 비용 절감에 주력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표 지수 상품들처럼 저렴한 운영 보수를 내세운 신규 상품의 출시는 물론, 기존 상품의 보수를 인하하는 움직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보수 인하 경쟁이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용사의 수익성과 ETF 시장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TF 시장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관 투자자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 ETF 시장에서 연기금과 보험사 등의 활용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TF 시장의 쏠림 현상과 과점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형 운용사 위주의 경쟁 구도가 고착화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해외처럼 ETF 출시와 운영을 지원하는 ‘화이트라벨링’ 모델을 도입하면 중소형 운용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어 더욱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ETF 시장의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품 간 차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혁신과 효율적인 경쟁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