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표된 ‘방위 대비 태세 로드맵 2030’이라는 유럽 방위계획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3년간의 논의 끝에 수립되었다. 이 계획의 주요 목표는 유럽 전역에 드론 방벽을 구축하고, 현재 20%에 미치지 못하는 무기 공동구매 비율을 2027년까지 4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의 예산안 합의 실패로 인해, 계획에 필요한 추가 자금 지원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고, 오직 기존의 유럽안보행동(SAFE) 대출 프로그램 중심으로 유지된 1500억 유로만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방위계획을 둘러싼 유럽 내부의 갈등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러시아 드론의 국경 침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유럽 국가들은 드론 방벽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국가는 드론 방벽이 동유럽 국가들에만 집중될 것이므로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차기 공격 목표가 자신들이므로 동부전선에 방어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30년 이상 동안 유럽의 안보를 지켜온 미국의 빈자리가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주도적으로 방위 전략을 이끌어나갈 국가가 없으므로, 국가 간의 갈등은 쉽게 조정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가 핵우산 제공과 군비 확장을 주장하는 중에도 국내의 재정 문제로 인해 상황이 복잡하고, 독일은 징병제 부활 가능성에 따라 연립 정부가 위기에 처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안보 홀로서기를 준비하면서 드러난 병참 수송 문제도 심각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군대와 군수물자는 그동안 미국의 군기지를 통한 수송로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유사시 민간철도와 도로의 통제로 동유럽까지 이동하는 데 수개월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군사 철도망과 도로망 구축이 급선무이다.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EU가 올해부터 2030년까지 편성한 전체 유럽 방위계획 예산 8000억 유로는 현실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십 년의 미국 의존 방위전략을 탈피하려는 자강안보가 가져온 막대한 비용과 그에 따른 도전 과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유럽의 방위계획 난항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이며, 자강안보가 단순한 정치 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실제 전략과 예산 편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