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는 청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연금(Superannuation)의 일부를 주택 구입 자금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First Home Super Saver(FHSS)’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주택 구매자에게 세제 혜택을 유지하면서 퇴직연금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도 인출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차별화된 인출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
애덤 호킨스 호주 재무부 차관보는 FHSS를 통해 매년 최대 1만5000호주달러와 누적 최대 5만호주달러를 인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납입한 금액만 인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규정은 노후 자금이 무분별하게 주택 구입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더욱이, FHSS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만 인출을 허용하고, 주택 매입 직후 반드시 실거주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퇴직연금 중도 인출에 있어 더 유연한 조건을 실시하고 있다. 무주택자가 주택 구매를 목적으로 한다면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IRP) 퇴직연금을 제한 없이 인출할 수 있어 최근에는 주택 구매를 위한 중도 인출액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퇴직연금 중도 인출액은 1조5217억원에 달하며, 이는 2019년에 비해 거의 두 배 증가한 수치다. 중도 인출 대상인 DC와 IRP 퇴직연금의 올해 적립금은 175조1928억원이며, 주택 구입을 위해 인출된 자금은 전체의 0.87% 정도이다.
호주 퇴직연금의 FHSS 인출액은 2024년 예상 인출액이 약 2억5520만호주달러로 전체 적립액의 0.006%에 불과하다. 이 같은 통계는 한국이 호주에 비해 미래 노후 자금을 무분별하게 인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중도 인출은 횟수와 금액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향후 부동산 상승기에 노후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쏠리는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퇴직연금 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두원 호주 시드니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은 이제 막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기에 접어들었는데, 주택 구매를 위한 중도 인출 제도를 정비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타 연금 선진국들도 과도한 중도 인출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중도 인출 시 세제 혜택을 반환해야 하며, 페널티로 10%의 세율이 적용된다. 영국에서는 55세 이전에 수령하면 55%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이처럼 한국과 호주의 정책 차이는 청년층의 주거 문제 해결 및 노후 자금 보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제도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