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당의 반대 여론에 힘입어 신규 원자력 발전소 1기의 건설을 취소하기로 결정하면서,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조정안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전문가들은 1년간의 심의 과정을 거쳐 수차례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련된 계획이 국회에조차 보고되지 않은 채 막판에 변경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야당이 정부의 보고 일정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행태가 월권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전기사업법은 전기본의 수립 시 국회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법적 기초 또한 무시되고 있는 셈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1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는 총 91명의 전문가가 참여하였고, 이들은 2023년 7월부터 87차례의 회의를 통해 실무안을 작성하였다. 최종안은 지난해 5월에 확정된 후, 9월에는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다져진 전문적인 의견이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이 크다.
전기본 실무안 준비에 참여한 A 교수는 “국회가 보고를 수용하지 않으니 정부가 내놓은 조정안은 고육책으로 보인다”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안이 이렇게 조정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방식이라면 향후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정부가 조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전문가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절차적 정당성을 손상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B 교수는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조율되어 수정된 것이라면 나름 국민의 뜻이겠지만, 일부 의원의 주장에 따라 국가 에너지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정부의 원전 공급 계획 수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치적 압박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국가 에너지 대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그는 “전력 수급의 기초가 되는 계획을 이처럼 임의로 조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정책 변경을 넘어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과 여당 의원들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향후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