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상반기 인수·합병(M&A) 시장의 흐름은 대기업보다 사모펀드(PEF)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이 투자 실패와 주력 산업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사모펀드는 약 36조원에 달하는 미집행 약정액을 보유하고 있어 기업 인수에 유리한 상황이다. 매일경제 레이더M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모펀드가 국내 기업을 인수한 총 거래액은 약 3조6000억원으로 16건에 이른다. 이중 글랜우드PE의 LG화학 수처리사업부 인수(1조4000억원),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애플 아이폰 부품사 에스아이플렉스 인수(4300억원), 어펄마캐피탈의 폐기물업체 CEK 인수(4000억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올해 상반기 대기업의 국내 기업 인수금액은 약 3조1500억원에 불과하며, 거래 건수 역시 6건에 그쳤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M&A 거래는 조 단위가 아닌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의 규모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SBI저축은행을 인수한 9000억원, 한화그룹이 아워홈을 인수한 8694억원, 웅진이 프리드라이프를 인수한 8879억원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거래들은 신사업 확장으로 해석될 수는 있지만, 미래 신기술과는 연결되지 않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IB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경험한 대기업들은 안정적인 영업현금 흐름을 가진 기업 인수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미래 신기술과 관련된 M&A는 리스크가 크기에 고려되지 않는 실정이다. AP의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10조원), 신세계의 이베이코리아 인수(3조4400억원)와 같은 대규모 거래는 현재로선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 SK, LG, 롯데, 효성 등 여러 대기업 그룹들은 M&A 시장에서 인수보다는 계열사 및 사업부 매각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SK그룹은 작년 SK스페셜티(2조7000억원), SK렌터카(8200억원), SK피유코어(4024억원) 등을 매각하며 계열사를 줄여왔고, 현재도 SK실트론, SK에코플랜트 환경 자회사 등 다수의 자산 매각을 계획하고 있다.
LG화학과 롯데그룹도 상황은 비슷하다. 석유화학 부문에서 부진을 겪는 LG화학은 수처리사업부 매각에 이어 다른 사업부 매각도 검토 중이며, 롯데그룹 또한 렌터카 분야에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기업이 인수자가 아닌 매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국내 M&A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국내 M&A 시장 거래 규모는 30조~40조원으로 2021년의 70조원대와 비교했을 때 크게 감소한 상태이다. 또한 사모펀드에서 제공하는 조 단위의 매물도 증가하고 있는데, DIG에어가스, 클래시스, HPSP,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코엔텍 등이 그 예시다. IB 업계 관계자는 “조 단위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대기업들 외에는 현금성 자산이 부족해 이를 인수하기 어려운 형국”이라며 “이런 이유로 M&A 시장 회복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대기업의 M&A 참여 감소는 선순환 구조를 위한 중소·중견기업과 사모펀드 간의 생태계 구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금력 있는 사모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