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증시에 입성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수는 올 하반기 들어 크게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정부가 공모주 시장의 단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그 결과 예비 상장 기업들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한 큐리오시스, 노타, 명인제약 등 신규 상장 기업들이 아직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 6월 예비 심사를 통과한 다른 기업들은 즉각적으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최근 시행된 IPO 제도의 변화가 생긴 여파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신규 상장 기업들이 기관 배정 물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 보유 확약 한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제도는 공모주 투자의 과열 상황 속에서 발생했던 기관의 무분별한 베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다. 과거에는 기관들이 수요 예측에서 공모가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해 물량을 확보한 후, 상장 당일 대량 매도를 통해 주가를 하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주가는 상장 이후 오름세를 지속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공모가는 할인된 가격으로 산정되어야 하지만, 기관들의 과도한 요구로 인해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향세를 보였다. 올 해의 경우 엔알비(-28%), 아우토크립트(-14%), GC지놈(-25%), 쎄크(-36%), 심플랫폼(-27%) 등의 기업들은 공모가를 상단으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가는 공모가에 비해 크게 낮은 상황이다.
이번 제도 개선에 따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기업들은 의무 보유 확약 비율을 40% 이상 채우지 않을 경우, 주관사가 미달 물량의 1%에 해당하는 금액(최대 30억원)을 공모가에 직접 인수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올해 말까지는 이 비율이 30%로 완화되어 있지만, 증권사들은 여전히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면, 의무 보유 확약 비율을 채우지 못해 주관사가 손실을 떠앉을 위험이 상존하며, 30억원은 IPO에 따른 수수료와 맞먹는 금액이다.
공모가를 낮추더라도 발행사가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상장 직후 매도가 금지돼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투자 태도를 유지하게 된다. 지난해 IPO를 진행한 기업들 중 단 19%만이 의무 보유 확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코스닥 IPO의 경우 그 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최근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투자처로 알려져 있던 공모주 펀드에서는 자금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공모주 펀드의 설정액은 2557억원 감소했으며, 올해 초 이후로는 총 6248억원 줄어든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옥석 가리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제도가 잘 정착될 경우 투자 심리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공모가가 충분한 기업 실사 및 기관의 가치 평가를 반영한 합리적인 가격으로 산정되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를 인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기대한다”며, 향후 어느 시점에서는 공모가 희망 범위가 매력적인 수준으로 다가와 다시 투자자들이 유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