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들이 자회사의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상장 유지 기준이 한층 강화되면서 모기업이 자회사를 통합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59개의 기업이 상장폐지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1개가 늘어난 수치로,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대기업들은 고액의 자금을 투입해 자회사를 상장폐지하며 모회사로의 완전한 통합을 꾀하고 있다.
일본 최대 통신업체 NTT는 최근 정보기술(IT) 자회사인 NTT데이터그룹의 남은 42% 지분을 약 2조엔에 매입하며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NEC도 자회사 NESIC의 지분을 공개매수한 후 상장폐지했으며, 유통 대기업 이온도 자회사 이온몰을 100% 완전 자회사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일환으로 증권시장을 대형주 위주의 프라임 시장, 중견기업 중심의 스탠더드 시장, 스타트업 중심의 그로스 시장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장 유지 기준이 선명해져 유통 주식 비중과 시가총액, 거래량 등을 포함한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로 떨어진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공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중복 상장된 기업들은 모회사가 자회사 가치를 평가할 때 큰 순자산가치(NAV) 할인으로 인해 PBR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프라임 시장의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져 그룹 전략으로는 자회사를 상장폐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선택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은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으며, 공개매수 자금 조달이 용이한 환경이 형성되어 있어 이러한 추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조달 비용이 높은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PBR 0.3배 미만의 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발언을 한 바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PBR 기준을 강화해 상속세 산정 기준을 시가가 아닌 PBR 0.8배로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변화는 한국의 기업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개정된 상법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앞으로 3%로 제한되는 조항이 포함되어 소액주주의 경영 참여가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대주주들에게 상장폐지를 고려하게 만드는 일종의 유인이 된다. 심지어 경영 참여형 PEF들은 자진 상장폐지를 통해 경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자진 상장폐지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충분한 프리미엄을 제공해야만 진행될 수 있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이자율이 낮지 않지만, 중복 상장된 대기업들이 많아 대주주들의 지분이 20~30%에 머물러 상장폐지 기준인 95%에 도달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일본의 자회사 상장폐지 열풍은 한국에도 교훈이 될 수 있으며, 정부가 기업가치 개선을 위해 입법적으로 시장을 정비해 나간다면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