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볼리비아가 미성년자 결혼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를 통과시켰다. 이번 법 개정은 18세 미만의 결혼과 사실혼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며, 부모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미성년자 결혼 허용 조항을 삭제했다. 이러한 변화는 조혼과 성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해석된다.
볼리비아 인권사무소는 이 법안이 하원에서 다수의 찬성을 받아 통과된 후 대통령 서명을 거쳐 공포 절차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도 이번 법안 시행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동안 볼리비아는 부모나 후견인의 허락이 있을 경우 16~17세 청소년의 결혼을 인정해왔다. 이는 전통적인 조혼 관습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원주민 사회에서의 문화 보존에 무게를 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혼인 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아동 및 청소년이 조혼으로 인해 성폭력, 원치 않는 임신, 인신매매 등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성인 남성에 의한 미성년 여성 성폭력 방조의 통로로 이러한 관행이 악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강력한 법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볼리비아 인권사무소의 ‘부서진 꿈’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15세 소녀 468명과 16~17세 청소년 4804명이 부모 동의를 통해 결혼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아동 권리 NGO인 세이브더칠드런도 2014년 기준으로 15세 미만 소녀 3만 2300명이 결혼 상태로 지정됐다고 보고하였다.
법안을 주도한 비르히니아 벨라스코 하원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청소년들이 부당한 결혼 강요에서 벗어나 교육과 미래를 보장받을 권리를 약속하는 중요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중남미 지역에서는 멕시코, 칠레, 페루 등 13개국에서 이미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결혼을 금지하고 있으며, 볼리비아의 이번 법 개정으로 또 하나의 국가가 아동 결혼을 불법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법 개정 전에도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인 간 동거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나, 약 3%의 볼리비아 소녀들이 15세 이전에 사실혼이나 동거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브더칠드런 소속 아동 보호 전문가 히메나 티토는 미성년자들이 결혼과 동거를 통해 각종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번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볼리비아 보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아동 및 청소년 임신 신고 건수가 45만 8000건을 넘어섰으며, 조혼 관행은 주로 가족 내 권력관계, 경제적 이유, 사회적 관용에 의해 촉진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벨라스코 의원은 “지역사회가 이러한 관행을 묵인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해당 법안이 아동과 청소년 권리 보호에 있어 역사적인 진전을 의미한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학교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권리 인식 제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법 개정 논의는 전직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15세 미성년자 성추행 및 아동 인신매매 혐의로 수사받는 상황과 맞물려 여당 내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