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과 체결한 무역 협정에서 정한 에너지 구매 조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고가 제기되었다. 미국 싱크탱크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로 인해 EU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EU는 지난 27일, 미국에 연간 2500억 달러(약 2150억 유로)의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대가로 EU산 상품에 대해 15%의 관세를 합의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제시된 바에 따르면, 지난해 EU는 전체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 중 21%인 약 650억 유로를 미국에서 수입했다. 이 합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미국산 에너지 수입량을 650억 유로에서 2150억 유로로 크게 늘려야 하며, 이는 EU 전체 수입금액 대비 미국산 의존도를 21%에서 약 70%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IEEFA는 이러한 합의가 성취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유럽 내 가스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시장의 과잉 공급량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주요한 우려 사항으로 지적되었다. 특히, EU는 과거에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공급망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해왔던 EU가 갑자기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구매 계약을 직접 관장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유럽의 민간 에너지 기업들이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지 않으면 이 합의는 실현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 내 환경 비정부기구(NGO)인 EEB의 한 관계자는 이 합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EU의 탈탄소화 목표 달성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IEEFA는 이와 같은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미국산 화석연료 수입 대신 재생에너지에 7500억 달러를 투입하면 EU의 전체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용량이 현재보다 90%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미국과의 관세 합의가 EU의 탈탄소화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방어하며, 향후 3년간 미국산 에너지 수입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U는 현재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량이 연간 900억에서 1000억 달러이며, 이것에 러시아산 화석연료 및 핵연료 수입량의 일부를 대체할 계획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수치의 합은 여전히 연 25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