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자산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경쟁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이선민 인하대 교수의 저서 《스테이블코인의 시대》는 이러한 디지털 통화의 전환을 기술적 관점이 아닌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조명한 국내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로, 한국이 이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 교수는 디지털 화폐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제 더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 아닌 전략적 접근법이라고 밝힌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민간 참여가 가능한 디지털 달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구현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대신, 민간 스테이블코인과 연방준비제도의 감독 시스템을 결합해 ‘민간 주도의 공공 통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21세기형 달러의 재설계로, 이 교수는 이를 통해 달러의 존재 양식이 지폐에서 코드와 데이터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한국은 블록체인 기술과 거래 인프라에서 세계 상위권에 속하지만, 디지털 화폐 정책과 제도적 틀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제도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CBDC 실험은 기술 검증 단계에 그쳐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원화의 존재감이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도 해외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기술적인 역량과 정책적 의지 간의 간극이 향후 한국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이 새로운 금융 질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검토하고 민간 참여를 장려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거래소, 은행, 핀테크 간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블록체인 기반의 국채 및 공공 금융 인프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가 차원의 결제, 예금, 채권 운동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은 개방형 표준을 중심으로 한 중립적인 네트워크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
이선민 교수는 마지막 장에서 21세기 방코르(Bancor)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1940년대 케인스가 제안한 국제 청산 통화 개념을 블록체인 기술로 재구성한 것으로, 여러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다자간 결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통화 패권을 완화하고 글로벌 신뢰를 분산하는 구조로, 한국과 같은 중견 기술국가에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디지털 금융 전쟁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준비하지 못한 국가는 금융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비트코인 전략 보유는 자산의 주권을 나타내고,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의 주권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디지털 금융의 미래는 기다리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