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물가를 인하한다는 통념은 옛말…AI로 인한 ‘칩플레이션’이 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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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혁신이 제품 단가를 낮춘다는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전력, 반도체,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인플레이션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루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급등이 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칩플레이션’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인 스티펠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티펠은 “기술재의 가격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초과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65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기술 디플레이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연방준비제도(Fed)가 선호하는 물량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정보처리장비의 가격이 올해 1분기 연율로 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민간 부문의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3.5%에 불과했다. 이는 기술 발전이 물가를 낮추는 것에 관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컴퓨터, 스마트폰, 전자제품의 가격이 기술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하락해왔지만, 최근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AI 서버에서 사용되는 GPU(그래픽처리장치), HBM(고대역폭 메모리), 변압기 및 냉각 장비 등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술 제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스티펠은 이러한 기술재 인플레이션이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고 평가하며, AI의 발전이 메모리와 GPU 가격을 급등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또한 “AI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전력과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중동발 고유가로 인해 시장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과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맞물려 에너지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AI 기술의 혁신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 3.50~3.75%로 유지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는 “현재의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알베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또한 금리 동결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에서는 GPU와 고사양 노트북, 전력 장비의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으며, 중동전쟁으로 인한 LNG 가격 상승과 AI 데이터센터의 확장이 뒤섞이며 전기료 인상 압력도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6%로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석유제품 가격이 20% 넘게 상승하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나아가 가정의 달을 맞아 수요가 증가하며 컴퓨터 가격도 19.4% 상승해 ‘칩플레이션’이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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