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며, 정부와 한국은행, 그리고 시장 간의 의견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올해 초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율 체계를 1분기 안에 수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 으나, 발행자 자격과 준비금 대한 규제 문제로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DAXA의 정책 자료집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세 가지 기능 중 일부를 수행하는 특별한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가 전통적인 화폐로 보기에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거래 처리 속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화폐의 필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비트코인은 총 공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되어 있으며, 4년마다 반감기를 거치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인 디플레이션 여부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의 초당 거래 처리 수(TPS)는 약 7건에 불과해 비자가 초당 최대 6만 5000건을 처리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체나 가치 척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이더리움 역시 가격이 미 달러에 종속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가치 척도 기능을 갖춘 화폐로 인식되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시장에서 화폐의 3대 기능에 가장 가까운 디지털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테더(USDT)와 서클(USDC)과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준비금으로 현금 및 미국 국채와 같은 자산을 보유하며, 1대1 비율로 토큰을 발행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약 3150억 달러에서 32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상위 5개 스테이블코인이 전체의 89%를 차지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당국과 시장의 시각 차이는 여전히 크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안전망이 없는 ‘민간 화폐’로 정의하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사용자들이 담보 자산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경우 뱅크런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시장 참여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타파하고 저렴한 거래 비용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러한 논쟁의 역사적 뿌리를 17세기 런던의 금세공업자들에서 찾았다. 당시 금세공업자들은 금을 보관하고 증서를 발행하여 지급 결제를 중개하는 제도를 운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출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였고 결국 은행 시스템으로의 발전을 이끌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도 100% 지급준비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유인이 늘어나며, 역사적인 뱅크런 재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범용적으로 사용될 경우, 사용자들이 지불하는 돈이 중앙은행의 화폐인지 아니면 민간 스테이블코인인지를 인식할 필요가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전통적인 화폐와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화폐의 특이점’에 도달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암시한다. 스테이블코인이 상업 금융 시스템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시장 간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